"DNR이 뭔가요? 이걸 쓰면 치료를 포기하는 건가요?" 간호사로 일하면서 임종을 앞둔 환자의 보호자분들이 이 질문을 하실 때 항상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가족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처음 들어보는 의학 용어 앞에 서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힘드실지 충분히 압니다. DNR이라는 단어가 주는 첫인상은 '포기'처럼 느껴지지만, 현장에서 10년 이상 일하며 제가 이해한 DNR은 조금 다릅니다. DNR은 포기가 아닌, 환자가 생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존엄한 권리입니다. 오늘은 DNR의 정확한 뜻, 법적 근거, 작성 방법, 그리고 현장에서 자주 오해받는 부분까지 간호사가 직접 경험을 담아 쉽고 명확하게 설명해 드립니다.
목차
- DNR이란 무엇인가|포기가 아닌 존엄한 선택
- 한국의 법적 근거|연명의료결정법이 보장하는 환자의 권리
- DNR 서류 작성 방법|누가, 어디서, 어떻게 작성하나
- DNR에 대한 흔한 오해와 진실

① DNR이란 무엇인가|포기가 아닌 존엄한 선택
DNR은 Do Not Resuscitate의 약자로, 직역하면 "소생술을 시행하지 마세요"입니다. 의학적으로는 심정지나 호흡 정지가 발생했을 때 심폐소생술(CPR), 인공호흡기 삽관, 제세동(전기 충격) 등의 연명 처치를 하지 않겠다는 사전 의사 결정을 말합니다.
국내에서는 DNR보다 넓은 개념인 연명의료 중단(DNAR, Do Not Attempt Resuscitation) 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용어로 더 공식적으로 사용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짚겠습니다. DNR은 모든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DNR을 결정했다고 해서 통증 완화, 수분 공급, 영양 공급, 감염 치료 등 환자의 편안함을 위한 기본 의료 행위가 중단되지 않습니다. DNR은 오직 임종 과정에서 심폐소생술과 같은 침습적 연명 처치를 하지 않겠다는 결정에 한정됩니다.
심폐소생술은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극적으로 환자를 살려내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말기 암 환자나 다발성 장기 부전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 갈비뼈가 골절되고 심한 통증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며, 회복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DNR은 이런 상황에서 환자가 고통 없이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입니다.
간호사 현장 노트
DNR 서류에 서명하는 순간 가족들이 "이러면 죽는 거 아닌가요?"라고 우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DNR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지를 미리 결정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DNR이 없을 때 환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과도한 처치가 이루어져 더 큰 고통을 겪는 경우를 현장에서 더 많이 봤습니다.
② 한국의 법적 근거|연명의료결정법이 보장하는 환자의 권리
한국에서 DNR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에 근거합니다. 이 법은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중단할 수 있다고 명시한 연명의료 항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 심폐소생술(CPR)
- 인공호흡기 착용
- 혈액 투석
- 항암제 투여
- 체외생명유지술(ECLS)
- 수혈
- 혈압상승제 투여
- 그 밖에 담당 의사가 판단하는 시술
이 법에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경우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로 한정됩니다. 임종 과정이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증상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사망이 임박한 상태를 말합니다. 단순히 예후가 나쁜 환자라고 해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연명의료 결정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입니다. 건강하거나 환자인 성인이 미래에 임종 과정에 처했을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에 관한 본인의 의사를 미리 문서로 남기는 것입니다.
둘째는 연명의료계획서입니다. 이미 말기 환자 또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담당 의사와 함께 작성하는 서류입니다. 환자가 직접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경우 법적 요건을 갖춘 가족이 대신 결정할 수 있습니다.
| 구분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 연명의료계획서 |
|---|---|---|
| 작성 시점 | 건강할 때 미리 작성 | 말기·임종 단계에서 작성 |
| 작성 주체 | 성인 본인 | 환자 본인 + 담당 의사 |
| 등록 기관 | 국가 지정 등록 기관 | 의료기관 내 |
| 법적 효력 | 임종 과정 진입 시 발효 | 즉시 적용 가능 |
③ DNR 서류 작성 방법|누가, 어디서, 어떻게 작성하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방법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기관에서 작성할 수 있습니다. 전국 병원, 보건소,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 치매안심센터 등 지정 기관이 있습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www.lst.go.kr)에서 가까운 등록 기관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
작성 자격은 만 19세 이상 성인 누구나 가능합니다. 건강한 상태에서 미리 작성해 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작성 절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등록 기관 방문 → 상담사의 충분한 설명 청취 → 본인 의사 확인 → 서류 작성 및 서명 → 국가 데이터베이스 등록 → 등록 확인증 수령
작성 시 지참 서류는 본인 신분증 하나로 충분합니다. 비용은 무료입니다. 한번 등록한 후에도 언제든지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습니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방법
연명의료계획서는 의료기관 내에서 담당 의사와 함께 작성합니다. 환자가 말기 또는 임종 과정에 해당한다는 의사의 판단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환자가 직접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경우에는 환자 본인이 서명합니다. 환자가 의식이 없거나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아래 순서에 따른 가족이 대신 결정할 수 있습니다.
- 배우자
- 직계 비속(자녀 → 손자녀 순)
- 직계 존속(부모 → 조부모 순)
- 형제자매 (위 가족이 없는 경우)
단, 가족이 대신 결정하는 경우에는 환자의 평소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하며, 담당 의사와 해당 의료기관 소속 의사 1인이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간호사 현장 노트
현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환자가 의사 표현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가족 간에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입니다. 한쪽은 연명 처치를 원하고, 다른 한쪽은 원하지 않을 때 법적으로 매우 복잡한 상황이 됩니다. 건강할 때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는 것이 본인의 뜻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④ DNR에 대한 흔한 오해와 진실
오해 1 — DNR을 쓰면 치료를 전혀 안 해 준다
사실이 아닙니다. DNR은 심폐소생술 등 침습적 연명 처치에 한정된 결정입니다. 통증 조절, 수분 공급, 감염 치료, 호스피스 돌봄은 DNR 여부와 무관하게 계속됩니다. 오히려 DNR 이후 환자의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하는 완화 의료(Palliative Care)가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오해 2 — 가족이 반대하면 DNR은 효력이 없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본인이 미리 의사를 밝혀두었다면 가족의 반대와 무관하게 법적 효력이 있습니다. 자신의 의사를 지키고 싶다면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해 3 — DNR은 노인이나 말기 환자만 작성하는 것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만 19세 이상 성인이라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사고나 갑작스러운 질환으로 의식을 잃게 됐을 때를 대비해 미리 작성해 두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합니다.
오해 4 — 한번 작성하면 바꿀 수 없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언제든지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습니다. 연명의료계획서도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상태라면 언제든지 변경 가능합니다.
오해 5 — DNR은 담당 의사가 결정한다
DNR은 환자 본인의 의사가 가장 우선입니다. 의사는 의학적 정보를 제공하고 함께 결정하는 역할이지, 의사가 일방적으로 DNR을 결정하거나 강요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환자나 가족이 원한다고 해서 의학적으로 임종 과정이 아닌 환자에게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도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 오해 | 진실 |
|---|---|
| DNR = 치료 전면 중단 | 침습적 연명 처치만 중단, 기본 돌봄은 유지 |
| 가족 반대 시 효력 없음 | 사전의향서 등록 시 법적 효력 있음 |
| 노인·말기 환자만 작성 | 만 19세 이상 누구나 가능 |
| 한번 쓰면 변경 불가 | 언제든지 변경·철회 가능 |
| 의사가 결정 | 환자 본인 의사가 최우선 |
마치며
DNR, 이제 조금 더 편안하게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한 줄로 정리합니다. DNR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내 삶의 방식을 내가 결정하는 존엄한 권리입니다.
이 주제가 불편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미리 생각해 두지 않으면, 가장 힘든 순간에 나 대신 가족이 그 결정을 짊어져야 합니다. 오늘 이 글이 그 무거운 결정을 조금 더 준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참고 출처
-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 법제처 (www.law.go.kr)
-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www.lst.go.kr)
- 보건복지부 연명의료결정제도 안내
- 국민건강보험공단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안내 (www.nhis.or.kr)
- 대한의사협회 연명의료 관련 가이드라인
본 콘텐츠는 의료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개인별 상황에 따라 반드시 담당 의료진 및 등록 기관 상담사와 충분히 상담하시기 바랍니다